모두가 잠들어 있는 새벽, 누군가는 깨어 있어야 한다면 내가 그 역할을 담당해보겠소. 당신들이 모른체 하고 있던 새벽공기와 새벽소주와 새벽비둘기와 새벽녘과 새벽우유와 새벽신문과 그외 숱한 새벽의 들은 내가 대신 영접해드릴터이니 댁들이 아침끼니로 준비해둔 토스트나 씨리얼 따위나 많이 남겨두고 가시오. 내게는 차마 거부하기 힘든 야식이고 마는거요. 몇시간 후면 쳐 자빠져 잘 놈에게 무슨 효용이겠느냐고 되묻지는 마시오. 곰선생께서 겨울잠에 드시기 전에 꾸역꾸역 멈추지 않고 자시는 꼴에 대해서 간섭할 생각이 아니걸랑은 말이오.
시류에 의하면 내일을 위해 오늘은 이만이라 말합니다. 그리고 내일이 되어서는 내일모레를 위해 또 이만이라 말합니다. 다음해를 위해 이번해는 이만이라 말하고, 더 나이든 후를 위해 젊은 지금은 어쩔 수 없이라고 모양빠지는 소리를 늘어놓기도 합니다.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라 할 때는 언제고 오늘의 즐거움은 왜 오늘 향유하지 못하는 겁니까? 미래를 확정될 수 없는 영원한 변동입니다. 불확실한 내일에게 현실의 삶을 저당 잡히어 생을 끌려 다니는 꼴은 참으로 애처롭기 까지 합니다. 심지어 그렇게 사는 자들을 가리켜 미래를 준비하는 성실한 사람들이라고 치켜세워 주기 까지 합니다.
젠장맞을, 미래 그 기집애가 대체 뭐길래...
오늘 밤 잠에 들고 나서 눈이 뜨면 내일이 온다는 사실이 거북했다. 내가 한 일이라곤 고작 침대에 누워 베게와 이불과 나와 매트 사이에서 비비적 거리다 잠에 빠져든 전부인데 그 사이에 무려 하루가 지났다는 거대한 일이 벌어졌다니. 나로썬 쉽게 납득하기 힘든 일이었다. 오늘도 감당 할 수 없는 내게 새로운 오늘을 강제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도저히 잠에 들 수 없었다. 뜬 눈으로 가만히 있었다. 1부 달의 행사에 게스트로 별이 출연하고, 1부와 2부사이 막간에는 잔잔하면서도 심플한 호흡의 여명이 나와 운치를 더하고, 2부에서는 태양의 열정적인 무대가 문을 연다. 내가 본 것은 하늘에서 벌어지고 있는 거대한 실황콘서트였을 뿐이다. <어제가 저물고 내일이 왔다>는 그런 이상한 관념으로 인간을 늙히지 말았으면 한다. 생각해보니, 날짜라는 것을 만듦으로써 인간을 조절하려는 음모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적당한 시점에서 인간을 성숙시키고 늙히고 죽게 만들어야겠다는 필요가 있던 것이겠지. 만약 날짜를 일일이 헤아리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쓸데없이 바쁘게 살 필요가 없었을 것이 아닌가. 겨우 육십이 된 걸 갖고 ‘나는 이제 꺽였어’ 따위의 웃기는 관념도 없어지겠지. 그때는 그야말로 나이란 상대적인 것이 될테니 생년으로 나이를 가릴 수 없게 될 것이다.
문명이 통계란 것을 가져오면서 예측을 하고 준비란 걸 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것이 과해져 현재를 볼모로 만들고 말았다.